1987년 6월 안양지역민주화운동 간략 개요

2020년 정리한 내용입니다

6월 민주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쟁취운동이다. 안양군포의왕 지역에서는 1985년부터 노동운동계를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다.

안양지역은 전국의 6월 항쟁기간 중 6월 19일, 23일, 26일에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19일과 23일은 노동운동 계열이 주축이 되었고, 6월 23일은 경기대와 한신대학생들이 이끌었다.

6월 19일은 9시 30분경 1만여 명의 시민들이 도로에 앉아 대중집회를 시작했다. 2시간 가까이 집회가 계속되며 전경대에 달려들어 투구와 방패를 빼앗는 등 몸싸움도 벌어졌다.

6월 23일은 안양중앙시장에서 시작된 시위대가 중앙로에 가득찼다. 한신대와 경기대 학생들 2백여명과 시민 1만명이 모인 가두시위는 밤 10시 경찰의 최루탄 발포로 해산했다.

6월 26일에는 규모가 더욱 커졌다. 2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현)안양CGV에서 시작해 서안양우체국, 만안구청, 성결대앞 사거리까지 행진했고, 차량의 흐름이 끊긴 안양로는 ‘해방의 거리’가 되었다.

안양지역은 어용노조민주화 투쟁과 파업투쟁을 전개하며 민주노조결성과 노동운동이 본격화했다. 87년 7월 27일, 한국제지의 노조결성을 시작으로 만도기계, 태광산업, 삼덕제지, 대우중공업, 경원제지, 유신중전기, 금성전선, (주)농심, 안양전자, 다우전자 등 안양권역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노조설립과 노동현장 민주화쟁취운동이 전개되었다. 노동운동가들은 안양지역노동자화를 결성했다. 안양민주화운동청년연합과 안양노동자회가 결성된 것도 이때쯤이다.

또한 1987년 하반기에는 안양독서회, 안양민요연구회, 우리그림 등 문화단체를 설립했고, 1988년 안양문화운동연합으로 연대발전해, 안양의 문화운동을 꽃피웠다.

종교권에서는 경서EYC, 경서지역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가 출발했고,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정선거감시운동을 주도했다. 박달교회, 살림교회, 우리교회를 시작으로 민중교회가 열리면서 안양지역민중교회협의회가 탄생했다.

안양지역은 그야말로 노동, 문화, 종교, 학생운동이 모두 결합된 산업도시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민주화를 외치며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모든 광장과 골목을 연결한 개인들의 함성이 모여 안양을 가득메웠다. 1987년의 외침은 대통령직선제 쟁취를 넘어서 ‘사람의 세상’으로 나가는 씨앗이 되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무한한 상상력, 불가능의 경계를 넘은 시민들의 힘이 1987년의 안양을 민주주의로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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